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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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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Sep 02.2017 "비난 받지 않으려면"
    하루를 여는 말씀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마7:3-4)   요즘은 교회나 세상 모두 비판과 비난이 난무합니다. 세상에서 같은 일을 하는 동료끼리 서로 비난하기도 합니다. 교회안에서도 성도끼리 서로 비판하고 비난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와 세상이 구분이 안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합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를 발견한 것인데 사실은 그 자신의 눈에는 큰 전봇대와 같이 티끌과는 상상할 수 없는 큰 티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아니.. 자신의 것은 비난이나 비판 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우깁니다. 그래서 실제로 거품을 물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난하는 사람을 향해서 속으로 ‘사돈 남의 말 하고 있네.’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입니다.   비판의 문제에 있어서 예수님이 주시는 지침은 간단합니다. 먼저 나 자신의 눈 속에서 들보를 뺀 후에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라는 것입니다. 나의 결점과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다보면 그것이 하도 심각하고 부끄러운 문제여서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는 문제로 느끼지도 못한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비판을 자제하다보면 우리 가운데 참다운 이해와 배려가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나 실수 할 수 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나 스스로에게는 “나는 실수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한다.” “나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실수를 비판하지 하지 않고 안아줄 때.. 그 사람이 나의 실수에 비난하지 않고 이해해 줄것입니다.   오늘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보다는 나 스스로를 철저하게 돌아보고 하나님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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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Aug 27.2017 "은혜 나눔"
    하루를 여는 말씀   에베소서 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하나님의 은혜는 받는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이고, 또한 독특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와 내가 받는 은혜는 그 모습과 과정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보통의 성도들은 내가 받은 은혜보다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를 더 크게 봅니다. 그런 마음은 결국 내가 받은 은혜의 소중함을 모르게 됩니다.   서로 다른 은혜를 통해 우리가 더 큰 은혜를 체험하는 방법은 그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와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눌 때 내가 받은 은혜가 더 커지게 되고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를 통해 내가 받은 은혜를 더욱 잘알게 되고, 또한 내가 받은 은혜를 통해 다른 사람도 더 큰 은혜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저희 교회 성도님들과 저희 교회에 찬양집회를 인도하시러 온 찬양사님이 식사를 하면서 서로가 받은 은혜를 나누면서 어제까지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가 되고 은혜를 끼치러 왔던 분이 은혜를 받고, 또한 그분으로부터 더 큰은혜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 나눔의 시간을 통해 우리 성도님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서로 다른 모양을 하지면 결국은 모든 은혜는 일맥상통하더군요.....   맞습니다. 바로 이런 교제가 천국의 교제이고, 바른 성도의 교제인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통해 더 큰 은혜를 경험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늘 누군가를 만난다면 은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내가 받은 작다고 생각하는 그 은혜가 나에게 꼭 필요한 하나님의 선물임을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그것은 은혜받은 성도의 삶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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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Aug 23.2017 "책임과 헌신의 사랑"
    하루를 여는 말씀   요한복음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무한책임과 무한헌신이 담겨져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기에 한없는 책임과 끝없는 헌신을 통해 자녀를 돌보고 양육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랑에는 책임과 헌신이 같이 있을 때 진정한 사랑이됩니다. 남녀간에 사랑의 책임과 헌신 없기에 사랑이 식어버리고 헤어지게 됩니다. 세상의 사랑은 그처럼 책임과 헌신이 없는 입으로, 감정적인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에는 책임과 헌신이 담겨져 있기에 그 사랑이 깊고 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의 독생자까지 내어주시면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에 책임을 다하셨고,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교회안에서 불리워지는 사랑에는 책임과 헌신을 찾기 힘듭니다.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책임과 헌신이 없는 사랑을 합니다. 울리는 꽹과리 같은 사랑을 합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한다면 나의 삶에 ‘순종’ 있는지 생각해 봐야합니다. 기분 좋은 감정들, 희생을 각오하는 마음, 열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감정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바로 그것을 삶으로 실천할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말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실천함으로 그 사랑에 대한 책임과 헌신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오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삶으로 보여봅시다. 작은 자들에게 하는 것이 곧 예수님께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세상에서 작은 자들, 힘이 없는 자들, 병든 자들, 외로운 자들에게 다가가서 버팀목이 되어주고,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대화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줌으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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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Aug 12.2017 "소망의 닻"
    하루를 여는 말슴   히브리서 6:19 “우리에게는 이 소망이 있으니, 그것은 안전하고 확실한 영혼의 닻과 같아서,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배가 항해를 할때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어 보이는 것이 닻입니다. 무겁기만 해보이는 닻이지만 그 닻이 제역할을 할때는 배가 어느곳에 정박을 할 때입니다. 이리저리 요동치는 세상의 파도 속에 배가 제자리에 있게하는 닻 그 닻이 있기에 아무런 큰 파도가 와도 배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도 은혜로 무엇인가에 헌신을 하며 앞으로 나아갈 때에는 믿음을 가지고 갑니다. 그러나 사방이 막여있어보여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그 순간 세상의 흐름에 떠내려 가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 주는 신앙의 닻은 소망입니다.   내 영혼이 단단하게 닻을 내려 정박되어 있는 곳, 그 어떤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전하고 튼튼한 닻, 나의 참 소망 예수님입니다. 그 신앙의 닻의 무게와 크기가 내가 견디어 내야 하는 파도의 크기를 이겨내게 합니다.   믿는자의 소망이 되신 예수님이 나의 신앙의 닻이 될 때 우리는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찬양할 수있게 됩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오늘 이 찬양처럼 내 신앙의 소망되신 예수님과 모든 상황에서, 모든 환경에서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능력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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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Aug 10.2017 "연단 ㅡ 주님께 가까이"
    하루를 여는 말씀 사랑하는 후배 목사님이 쓰신 책 "올인"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삶을 드릴 때 우리의 헌신을 기뻐 받으시는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놀라운 사역과 비전의 현장으로 곧장 인도하시지 않는다. 그 반대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땡볕이 내리쬐는 광야로 인도하신다. 모든 의지할 만한 것들을 제거하시고, 그분을 향한 우리 마음을 불도가니 속에서 녹여 솎아내듯 연단하신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빚어지며 우리를 향한 그분의 부르심에 대한 확정을 받게 된다. 만약 이 과정을 건너뛰면 어떻게 될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과정을 통과해도 우리는 연약하여 때때로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러나 바닥을 치고 완전히 깨어져 자기 마음의 중심과 동기가 철저히 검증되고 연단 받은 심령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라. 이런 연단과 훈련의 과정이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음 단계로 더 깊이 그분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이런 시간들이 되풀이될 것이다. 감사한 것은 막상 그런 시간 앞에서는 너무 힘들고 어렵지만 실상은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 우리가 모든 일이 있은 후에도 넘어지지 않고 온전히 주님 앞에 서는 제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훈련, 제자의 삶, 연단에 대한 너무도 귀한 글입니다. 이 글에서 알수 있는것은 훈련과 연단은 힘든것이지만 그 과정이 내가 하나님께로 한걸음 더 나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조금은 돌아가고, 조금은 힘들어도 그 길을 함께 해주시는 주님이 계서 감사하고, 그 길 끝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감사한것입니다. 오늘 제자로, 하나님께로 한걸음 더 다가가는 훈련의 날이기에 기쁨으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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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Aug 05.2017 "감사를 넘어 찬양으로"
    하루를 여는 말씀   시편 150:6 “숨쉬는 사람마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감사하는 삶보다 더 높은 단계의 삶이 찬양의 삶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우리로하여금하나님을찬양하게하기위한것이기에 성도의 삶은 찬양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은 노래를 포함한 성도의 고백, 삶, 행위를 포함한 모든 것이 됩니다. 감사의 삶도 신앙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때에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를 한다는것은곧신앙의결과이기때문입니다.   이제 감사의 삶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그 감사를 하나님께 어떻게 표현하고, 그감사의삶을성도의삶으로나타내는것이찬양의삶입니다.   어느 기도문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감사를 하고, 그다음그것으로인한찬양이나오는글입니다.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을 반성할 수 있습니다.  아들 딸이 걱정 거리가 되게 하시고 아내와 남편이 미워질 때도 있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써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허탈하고 허무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영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니까요.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기도문처럼 감사하는 삶에서 그상황을주신하나님을찬양하는하루가되기를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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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Aug 02.2017 "진정 찾아야 할 것"
    하루를 여는 말씀 마가복음 6: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나옵니다. 말씀을 들으려, 구경하러,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장소가 광야에서 교회로 바뀌었을뿐 사람들의 이유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앞에 나온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셨습니다. 구원과 멸망, 복과 저주, 천국과 지옥, 알곡과 가라지.... 예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동일하게 죄에서 구원 받고 천국의 복을 이땅에서 누리며 그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군중이나 지금 현실교회의 성도들이나 그 영생의 말씀과 성결한 삶에 대한 것인 잊어버리고 가르침 다음에 보이신 오병이어의 기적만을 기억합니다. 말씀의 가르침을 통해 영생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필요한것을 채워주시는 주님 곁에만 머물러 그분의 오병이어만을 바랄때, 예수님은 그들을 흩어버리셨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말씀 묵상을 통해, 기도를 통해 과연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말씀과 사명을 찾는지 아니면 삶에 필요한 오병이어만 찾고 있는지... 영생은 말씀에 있지 오병이어에 있지 않습니다. 말씀안에 오병이어가 있음을 깨닫는 것이 영적인 바른 삶이요 은혜입니다. 오늘 오병이어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쫒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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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Aug 01.2017 "들을 준비"
    하루를 여는 말씀 잠언 1: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주일날 강단애서 설교할 때 설교를 듣는 성도들늘 세부류로 나눌수 있습니다. 설교를 진진하게 듣고 마음으로 받는 성도들, 설교를 귀로만 듣고 있는 성도들, 설교를 전혀 듣지 않고 쳐다만 보는 성도들.. 그러기에 은혜를 받는 정도도 다르게 나옵니다. 흔히 설교가 좋아야 은혜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맞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씨뿌리는 비유를 보면 씨를 뿌리는 것은 이런저런 밭을 가리지 않습니다. 밭이 문제입니다. 밭이 좋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목사를 설교단에 세우면서 “이 목사가 설교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물론 이런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보다 더 시급히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나는 목사의 설교를 들을 자격을 갖추고 준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성도가 설교를 들으러 올 때 겸손한 자세로 임한다면, 주님이 그들에게 보내주신 촛불이 크던 작던 간에 그 촛불에서 아주 많은 빛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 하나님은 때로 아주 보잘것없는 것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는 사실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주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의 귀로 들어도 사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해야합니다. 천지만물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하는 자세로 한주를 살면, 주일 아침 설교는 나를 위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릴것입니다. 마음의 밭을 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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