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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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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Jun 10.2020 "주를 위해 살 때"
    하루를 여는 말씀   로마서 14: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에 의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살고, 자신을 위해 살며, 자신의 뜻에 의해 살아갈 때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하는 것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이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파는 일을 하였습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결국 문제앞에서 그 사람의 신앙이 드러나며, 그 신앙은 두려움으로 변하게 됩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은 스스로 이겨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은 죽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죽는 사람은 삽니다.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은 두려움 앞에 실패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두려움을 이겨냅니다.   내가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살아있는 신앙이고, 그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오늘,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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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7
    최고관리자Jun 09.2020 "주의 위로'
    하루를 여는 말씀 시편 94:19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근심과 걱정, 분노는 찾아옵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심하고, 하나님을 떠나 예배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같은 일을 당하면서도 마음은 아프고 상하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헌신의삶을 이어갑니다. 전자의 사람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그것만 생각하기 때문이고, 후자의 사람은 힘들게 하는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차이입니다. 전자의 사람은 결국 예배하지 않지만, 후자의 사람은 위로를 얻고 예배의 자리를 지키게 됩니다. 본문에서 '주의 위안'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계속되며 여러 방면으로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위안은 여러 모양으로 지속적으로 다가옵니다.  곤란 중에도 하나님은 말씀으로 심령을 위로하시고, 따뜻한 임재의 손길로써 나를 붙드시고, 나를 힘들게 하는 악인에게는 징계를 내리시며,  나에게 복되고 확고한 미래에 대한 약속을 주심으로써, 고통의 현실 속에서도 확고한 소망 가운데 기뻐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위로가 지속적으로 있기에 우리는 역경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고민과 고통, 걱정과 근심을 바라보지 말고, 말씀 묵상과 기도, 그리고 찬양을 통해 그것을 해결하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하루가 되기를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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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6
    최고관리자May 30.2020 "존중하는 삶"
    하루를 여는 말씀 사무엘상 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본문은 후에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멸시함으로써 하나님을 가볍게 여긴 사실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멸시함으로 하나님을 가볍게 여겼던 그들은 실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쟁에서 죽고 맙니다. 또한 하나님보다 자신의 아들들을 더 중히 여김으로 하나님을 가볍게 여겼던 엘리 제사장도 의자에서 자빠져 죽는 어이없는 인생의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하나님을 가벼게 여기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존중히 여기며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코로나로인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린지 3달가까이 되는데, 놀라운 사실은 3달동안 한번도 예배를 드리지 않은 사람들이 전체 기독교인중에 30%가 된다고합니다. 또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릴때, 누워서 보는 사람, 세수도 안하고 보는 사람, 제 시간이 아닌 편안한 시간에 보는 사람, 보다가 음식을 먹는 사람, 예배 인도자의 인도에 하나도 따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이번 코로나는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여기고 사는지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삶의 자세가 곧 믿음의 척도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와 집에서 온라인으로 드릴 때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면 자신의 믿음이 거짓이고,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는 믿음이며, 죽은 믿음이 분명합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히는 존재이지, 어둠과 어울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내가 어느곳에 누구와 있는가와 상관없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바른 태도, 하나님을 존중하는 태도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누군가 곁에 있을때와 혼자 있을때 삶이 다른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혼자 있을때와 누군가 함께 있을때에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분을 존중합니다. 나를 멸시하는자....내가 경멸하리라.... 이것은 경고입니다... 경고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존중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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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
    최고관리자May 29.2020 "낙심이 아닌 소망을..."
    하루를 여는 말씀 시편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낙심하고 있음을 알고 스스로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면 하나님께서 낙심되는 상황을 정리하시고 내가 찬송하게 만들어주신다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씩 낙심을 하며 불안해 합니다. 그런데 그 낙심과 불안은 얼마전에 내가 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새롭게 만나는 낙심되는 상황이나, 불안은 거의 없습니다. 조금 다를 뿐이지 세상에서 만나는 낙심과 불안함은 같은 것입니다. 하와가 만난 유혹과, 예수님이 당하신 유혹이 같고, 바울이 이야기하는 세상의 유혹이 같은 것이듯, 삶에서 오는 불안함, 낙심하는 마음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번 새로운 낙심과 불안을 당하는 것 처럼 반응을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지난번 낙심과 불안을 해결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결과입니다. 사사기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기도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식적인 믿음만 있고, 경험적인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식적 믿음은 나의 삵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그것은 믿음으로 살게 하지도 못합니다. 셋째, 마음을 세상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물질, 재산, 집, 건강에 마음을 두고 있기에 그것이 없어지면 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거나, 그것이 없어짐으로 어려워질 삶의 환경에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매번 낙심하고 불안해 하는 것은 마음을 세상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해 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하는 시편 기자 처럼.... 우리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문제는 잠시 불편함을 줄뿐이지, 그것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힘들게 하지 못합니다. 불편함은 불행이 아닙니다. 편안함이 행복이 아니듯..... 지금 마음에 낙심과 불안함이 없으니 나는 괜찮아 하는 생각을 품었다면, 지금 나는 행복하고 기쁜가를 생각해 보세요... 그렇지 않다면 그것 또한 불안함과 낙심의 다른 모습입니다. 나의 마음을 향하여 스스로 선포합시다... "불안해 하지말고,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하나님께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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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4
    최고관리자May 28.2020 "떠나야 합니다."
    하루를 여는 말씀 창세기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장을 시작하시면서 아브람을 부르십니다. 세상의 제사장 나라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은 아브람을 부르시는 것으로 시작 하셨습니다. 왜 그 나라에서 잘지내고 있는 아브람을 부르시고는 전혀 모르는 곳으로 가라고 하셨을까? 우리는 보통 지금 있는 곳에서 복을 받고, 지금 하는 것에 복을 받고, 큰 변화가 없이 나의 삶에 복이 더해지기를 원합니다. 만약 지금 있는 곳에서, 지금 하는 것에 복이 임한다면, 세월이 흐른 후에 그 복이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것으로 자랑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습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있어야 할 곳은,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서 있는 자녀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있는 그 자리, 편안함의 자리, 세상의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말씀을 읽지 않고, 묵상하지 않으며, 기도하지 않는 신앙의 게으름의 자리를 떠나서 은혜의 자리로 가야 합니다. 잘못된 신앙의 방법이 내가 있는 곳에서 복을 받으면 은혜의 자리로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랜세월 신앙생활을 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게으름의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가야 합니다. 나의 편안함과 익숙한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내 자리를 떠나기 위해 일어나는 것으로 참된 신앙의 길은 시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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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May 24.2020 "눈치가 아닌 의식"
    하루를 여는 말씀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계심을 마음으로 행동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신 다는 말씀은 즉 자기를 찾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루를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의식하며 사는 것은 눈치를 보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눈치를 보는 것은 첫째 나를 지켜보는 분에 대한 믿음이 확실 하지 않을때 봅니다. 둘째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나 생각이 나를 지켜보는 분의 생각과 다를때 봅니다. 셋째 나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없고 자존심만 있을때 봅니다. 의식하는 것은 그분이 좋아하실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계심이 든든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에 대한 사랑에 확신을 갖고 있을때 나타납니다. 성도는 상을 받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상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 보고계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것 자체가 상급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지켜 보시는 하나님이 계심으로 나는 상급을 받았고, 그 주신 상급을 삶에서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오늘 상급을 받기 위해 눈치를 보며 살것인지... 주신 상급을 누리며 살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받기 위한 삶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주신것을 누리는 삶은 순간순간이 행복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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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
    최고관리자May 22.2020 "건축자"
    하루를 여는 말씀 시편 23: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보여주신 일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두려워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어디를 향해 가려고 혼자 고민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인도하고 있느니라. 무엇을 해야 할지 당황하며 계획을 세우려고 애쓰지 말아라. 너에 대해서 내가 이미 계획을 세웠느니라. 무엇을 가져야 할지 고민하지 말아라.  네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것이니, 언제나 침착하고 평온하게나아가거라. 성경 곳곳에 남겨 놓으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 할 때마다 참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제도 내일을 걱정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걱정이라는 개미지옥에 빠져 아둥바둥 거리며 살았습니다. 지나고 나면 쓸데없는 것이 걱정입니다. 걱정은 해결권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될 때 나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걱정하며 지내는 것은 곁에 계신 하나님을 의식 하지 못하는 것이고,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 설계자(architect)요, 또한  건축자(builder)이시다. 나의 인생의 모든 것을 설계하신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라고 우리를 광야로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설계하신 목적대로 그것을 세워 나가시는 건축자 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내가 무엇을 할것인가를 고민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건축하신 하나님의 뜻에 감사하면 내가 살아야 할 내일을 기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믿음이 있는 것 처럼 살지말고, 살아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삶으로 선포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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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
    최고관리자May 20.2020 "찾아오신 하나님"
    하루를 여는 말씀 요한복음 1:14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요즘 세상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종교 다원주의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같다는 주장을 펴고있는데. 그들이 하는 말은  산 꼭대기에 있는 신을 만나러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걸어서 올가가는 사람,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사람, 헬기를 타고 가는 사람, 또한 길도 여러가지이다. 북쪽 길로 가는 사람, 남쪽 길로 가는 사람, 절벽으로 올가가는 사람... 가는 방법, 길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가는 곳은 같고, 만나고자 하는 신은 같다.... 다만 그 신을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은 다르지만 종교는 결국 같은 곳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정말 어리석은 소리입니다. 세상의 종교와 기독교의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종교는 사람이 신을 찾으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행을 하거나, 단식을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여러가지 방법으로 신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 오셨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찾으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배신의 길을 떠났는데,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셔서 찾아오셨습니다.  그것도 눈높이를 맞춰주시고자 사람의 모습으로... 신앙은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사람은 말씀으로 살아가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에 말씀데로 살지 못하고 비슷하게 살면서 믿는다고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오늘 나의 삶은 찾아오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은혜를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자 찾을때, 하나님은 살아계심을 드러내 보이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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